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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함께 걷는 시간의 도시, 나라(Nara)

by black-rose1 2025. 7. 22.

안녕하세요. 오늘은 천 년의 숨결을 간직한 고도, 나라(Nara) – 사슴과 함께 걷는 느린 시간의 도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나라현에 위치한 고도(古都) 나라시는 일본의 첫 수도였던 도시죠.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뿌리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35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도시는,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사와 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그리고 사슴이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나라 공원으로도 유명하죠.

교토보다 더 오래된 역사, 사슴과 인간이 공존하고 있는 거리, 사찰마다 담긴 불교적인 철학, 그리고 일본 문화 자체가 담긴 이곳은 관광지이라기보다 ‘순례’에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깊이 음미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사슴과 함께 걷는 시간의 도시, 나라(Nara)
사슴과 함께 걷는 시간의 도시, 나라(Nara)

시간의 안쪽에서 만나는 일본 – 나라의 역사와 문화.


나라시는 일본 최초의 수도인 ‘헤이조쿄(平城京)’가 위치했던 도시로, 710년에 일본 중앙 정부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나라 시대’(710~794)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불교, 한자, 도자기 기술 등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다양한 문화가 일본식으로 정착되던 시기로, 나라시는 일본 문명의 근원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중심에는 유서 깊은 사찰들과 고대 문화유산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죠.

도다이지(東大寺):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찰로, 세계 최대 목조 건물인 다이부쓰덴(大仏殿)과 높이 15미터에 이르는 대불상이 있는 곳입니다.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수차례의 재건과 보존을 거쳐서, 지금도 불교 신앙의 중심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나라 공원 내 위치한 신사로서, 신도(神道)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유려한 건축과 붉은 등롱이 인상적이랍니다. 수많은 석등과 청동등이 길을 밝히고 그 풍경은 마치 옛 소설 속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야쿠시지, 고후쿠지, 간고지 등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사찰인데요, 나라의 문화 수준과 정신성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사찰과 신사에서는 단순한 관람 이상의 경험도 가능합니다. 좌선 체험이나 쓰루가와 유리공예, 일본 고문자 읽기 체험 등을 통해서 이것들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시간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나라의 문화는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 동물과 신의 경계가 느슨한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나라 공원의 사슴이 대표적입니다. 사슴은 신의 사자로 여겨져 신성한 존재로 보호받고 있으며, 실제로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다가옵니다. 순수함을 상징할 수 있는, 인간 중심이 아닌, 자연 중심적인 사유의 공간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기에, 나라를 걷는 것 자체가 성찰이 될 수 있죠.

 

고요한 절경 속 다도와 향기, 나라에서 맛보는 전통의 미식.


일본 음식이 대부분 그렇지만, 나라의 음식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맛보다는 전통과 제철을 존중하는 깊이 있는 맛이 더욱 주를 이룹니다. 여기에서의 식사는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계절, 문화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 음식 
가키노하 스시(柿の葉寿司): 연어 혹은 고등어를 초밥으로 만들어 감잎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싸서 발효시킨 전통 초밥입니다. 감잎의 은은한 향과 산뜻한 산미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을 자아내고 있어, 여행 중 도시락으로 즐기기 좋습니다.

나라나 요세(奈良の寄せ): 지역 두부 요리를 기반으로 한 정식으로, 계절 채소와 콩을 중심으로 한 심플하고 건강한 요리입니다. 불교문화와 연결된 사찰 요리(精進料理, 쇼진요리)의 영향을  받았죠.

차도 체험: 나라에서는 전통 다도 체험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실제 다실(茶室)에서 말차를 직접 마시고, 차도 예절을 배우는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고, 이런 경험은 음식이 곧 마음의 수양이 됩니다.

미와 소면(三輪そうめん):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면 생산지인 미와 지역에서 생산된 전통 소면. 가늘고 부드러운 면발과 함께 다양한 온·냉 요리로 즐길 수 있으며, 소면 박물관도 있어 체험과 구입이 가능하기도 하죠.

나라의 식문화는 조용함을 요구합니다. 빨리 먹는 식사가 아닌, 조용히 머물며 나눔을 실천하는 식탁이 주가 됩니다.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담는 그릇, 놓인 공간, 계절의 공기까지 느끼는 식사가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식사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나라를 제대로 여행하는 법과 여행 팁, 추천 코스.


나라 여행은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는 여행과는 그 결이 조금 다릅니다. 사색적이고 내면적인 여행, 걷고, 보고, 느끼고, 비우는 여행이 되어야 하는 거죠.

🚉 교통 팁
나라에는 JR 나라역과 긴테츠 나라역이 있습니다. 교토(약 40분), 오사카(약 45분)에서 당일치기로도 이동 가능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1박 이상을 추천합니다.

시내 교통은 도보 + 버스 조합이 좋습니다. 나라 버스 패스(Nara Bus Pass)를 구매하면 하루 동안 자유롭게 이동 가능.

🛌 숙소 선택
나라 공원 인근 료칸 또는 미니 호텔을 선택하면 아침 일찍 사슴과 함께 산책하거나, 조용한 사찰 산책이 가능해집니다.

사찰 숙박(宿坊)도 체험 가능하며, 아침 좌선 및 정진식(精進食) 포함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 추천 여행 일정 (1박 2일 기준)
첫째 날:

오전: 도다이지 → 나라 공원 → 사슴과 교감

오후: 가스가타이샤 신사 → 나라 국립박물관 → 간고지

저녁: 전통 료칸 숙박, 지역 요리 정식 체험

둘째 날:

아침: 나라 공원 산책 → 미와 소면 체험 → 사찰 요리 점심

오후: 미와 신사 또는 이카루가의 호류지(법륭사) → 귀경

기념품은
사슴 모양 센베이

가키노하 초밥 도시락

미와 소면 세트

전통 유기 접시, 사기 다기 세트

불상 모티브의 향로, 다도 용품등으로 다양합니다.

 

마음의 공부를 하는 나라에서 마주하는 아주 느린 행복!

이런 나라에서는 시간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스마트폰 알림 대신 바람 소리가 들리고, 복잡한 마음 대신 느긋한 발걸음이 삶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사슴이, 자연과 신이, 고대와 현대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공존’과 ‘순리’의 의미를 깨닫게 되죠.

여기에서는 '반드시 해야 해'가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많은 도시입니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놓치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고요한 여행이 되기에 행복한 곳.

나라. 사슴이 인사하는 길 위에서, 여러분도 천천히 걸어보십시오.
그곳에 있는 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