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투명했고, 햇살은 친절했습니다.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환하게 반겨주었고, 하늘은 언제나 깊고 푸르렀습니다. 그렇게 나는 ‘세부’라는 이름의 섬에서 삶이 조금은 천천히 흘러도 괜찮다는 걸 배웠습니다. 오늘은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섬, 세부에서의 감각적인 여행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필리핀 수천 개 섬 중에서도 유독 따스하고, 아름답고, 특별했던 그곳. 지금부터 나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세부로 떠나 보겠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 푸른 낙원 — 세부의 바다에 빠지다
세부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당연히 바로 바다입니다. 하지만 세부의 바다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닙니다. 그곳은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 때로는 모험의 무대이기도 하답니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건 모알보알(Moalboal)이라는 작은 마을인데요, 이곳은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어요. 투명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사딘런(Sardine Run)이라 불리는 수천 마리 정어리 떼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죠. 처음엔 그 움직임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하지만, 곧 그 리듬에 몸이 동화되며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오슬롭(Oslob)입니다. 이곳에선 거대한 고래상어와 함께 수영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합니다. 수면 아래로 들어가 고요한 숨을 들이쉬는 순간, 갑자기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고래상어. 그 크기와 순한 눈망울을 마주하는 찰나, 그런 자연에 비하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조금 더 여유로운 풍경을 원한다면, 막탄섬(Mactan Island) 근처의 호핑투어도 추천합니다. 낚시, 바비큐, 스노클링이 포함된 투어는 단순한 액티비티를 넘어서, 현지의 리듬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죠. 필리핀식 바비큐를 맛보며 선상 위에서 낮잠을 자고,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그 여유. 세부의 바다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머무는 공간입니다.
시간 위를 걷는 여행 — 세부의 역사와 사람들
바다의 낭만 뒤에는 깊은 역사와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세부 시티(Cebu City)가 있습니다. 필리핀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였던 이곳은, 유럽의 흔적과 현지 전통이 절묘하게 섞인 독특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죠.
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는 세부의 역사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곳입니다. 1521년,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이 필리핀에 기독교를 처음 전파한 상징으로, 현재는 유리 돔 아래 소중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현지 사람들이 기도문을 적어놓은 종이와 꽃이 쌓여 있고, 가끔은 작은 합창이 들려오기도 해요. 이곳에선 종교, 역사, 문화가 하나로 뒤섞인 세부만의 ‘신성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산토니뇨 성당(Basilica del Santo Niño)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교회인데, 현지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초를 켜고 기도를 드리며, 성당 내부는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듯한 감정의 공간이죠.
그리고 이 도시에 특별한 온기를 더하는 건 바로 사람들입니다. 세부 사람들은 낯선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답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버스 안에서, 시장에서, 골목에서. “Where are you from?”, “Kumusta ka?” (어떻게 지내요?) 작은 인사말 하나가 여행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 이 도시가 낯설지 않다는 기분이 들어요. 세부는 사람의 온기로 완성되는 도시입니다.
향기, 색, 맛이 어우러진 순간 — 세부의 음식과 골목 풍경
여행지에서의 ‘맛’은 그 도시의 언어와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세부의 음식은 소박하지만 강렬한 풍미로, 여행자의 감각을 깨어나게 하죠.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건 레촌(Lechon)입니다. 통돼지를 바삭하게 구워낸 필리핀식 바비큐로, 세부 레촌은 필리핀 전역에서도 최고로 손꼽힙니다. 특히 카르카르(Carcacar)나 리코스(Rico’s Lechon) 같은 현지 맛집에서는 껍질의 바삭함과 육즙 가득한 고기의 조화가 일품이에요. 처음엔 다소 기름진 듯 느껴질 수 있지만, 곁들여 나오는 식초 소스를 찍어 먹으면 깊고 중독성 있는 맛으로 변합니다.
또한 시니강(Sinigang)이라는 필리핀식 새콤한 국물 요리도 세부에서 인기입니다. 망고, 타마린드, 칼라만시 등의 과일로 맛을 내며, 해산물 또는 돼지고기와 함께 푹 끓여냅니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고, 더운 날씨에도 개운하게 먹을 수 있어요.
골목으로 들어서면, 음식 이상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노는 좁은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코코넛 주스를 파는 리어카, 낡은 트라이시클(필리핀식 오토바이 택시)이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느긋한 팝 음악. 이 조화는 세부만의 온도와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저녁이면 IT 파크나 수가보 메르카도(Sugbo Mercado) 같은 야시장에 가보세요. 푸드 트럭, 라이브 음악, 플리마켓이 함께 어우러지며 젊은 세부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필리핀식 꼬치구이부터 일본 라멘, 태국 팟타이까지 세계 음식이 모여 있는 이곳은 단연 미식가의 천국입니다.
🌺세부는 ‘가만히 머무는 여행’이다
세부에서의 여행은 격렬한 자극보다는 조용한 울림에 가깝습니다. 바다도, 사람도, 골목도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내 마음속 목소리까지.
세부는 “놀라운 곳이야!”라고 크게 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죠. “세부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고.
당신이 진짜 여행을 원한다면,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고 싶다면. 세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고요하지도 않은 적당한 따뜻함으로 말이죠.
추천 여행 정보
🌍위치: 필리핀 비사야 제도 중부, 세부섬
✈️ 접근: 마닐라 경유 또는 인천 → 막탄국제공항 직항
🌤️ 여행 적기: 12월~5월 건기 시즌
🏄♀️ 추천 활동: 스노클링, 다이빙, 고래상어 체험, 시티 투어, 야시장 탐방
🍽️ 추천 음식: 레촌, 시니강, 나시고랭, 바나나 큐
💡 꿀팁: 환전은 공항보다 세부 시티 내 환전소 이용 / 대중교통보다는 그랩(Grab) 이용 권장
세부는 기억 속에서 천천히 향기처럼 퍼지는 여행지입니다. 지금 떠나도, 언젠가 훗날 다시 떠나도 그곳은 같은 온도로 여행자를 반겨줄 거예요. 세부에서도 아름다운 추억 만드시기를 바랍니다.🌺